내가 들려주는 이야기 | Posted by 풀내음+ 2016. 4. 9. 08:17

넷. 노출

묵혀왔던 이야기들을 꺼내는 중입니다. 

원문 https://brunch.co.kr/@dodam/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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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립쇼를 할까나

 

오늘도 나는 화장에 공을 들인다. 너무 수수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화려하지도 않은 '적당한' 톤으로 얼굴에 색을 입힌다. 마지막으로 입술에 혈색 좋아 보이는 붉은색을 덧칠한다. 거울을 보며 웃는다. 적당한 미소를 찾기 위해 두어 차례 더 웃은 후에 열쇠를 챙겨 방을 나선다. 오전 10. 마을버스를 타는 편의점 앞에는 대학생 혹은 대학생으로 위장한 백수처럼 보이는 사내 셋이 제각각 딴전을 피우고 있다. 그들이 피우는 싸구려 담배 연기로는 그들의 시선을 가릴 수 없다. 나는 주눅 들지 않고 몸을 꼿꼿이 세운다. 버스가 오고 나는 제일 먼저 차에 올라 단정한 매무새로 자리에 앉는다. 남자들이 차를 탄다. '한심한 것들. 속이 훤히 보인다 보여.‘

 

1110분 전에 나는 안전하게 도착했다. 강당처럼 보이는 다소 넓은 공간에 두꺼운 침묵이 사람들을 고정시킨다. 나도 자세를 바로 한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희 D그룹 최종 면접에 오신 것만으로도 여러분들은 자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지금부터 명찰을 나누어 드릴 테니 상의 왼편에 착용하시고 순서에 따라 이동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고딕체로 인쇄된 명찰을 옷에 고정시키느라 옷핀과 씨름하는 사이, 가마가 두 개이던 내 앞의 남자가 일어나 사라져 버렸다. 희미한 말소리가 들렸다가 말았다. 가방에서 자기소개서 내용을 적어둔 노트를 꺼내 듬성듬성 확인을 하였다. 아직 초조하지 않았다.

 

면접관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자신의 가장 큰 능력은 무엇인지 말해보세요." 첫 질문이 강했다. 하지만 벌써 면접만 일곱 번째인 내게서 당황의 기색은 전혀 보일 리가 없다. 나는 화장을 꽤 잘 하고 온 것 같다. "저의 가장 큰 능력은 자신감입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한 모습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던진 면접관의 머리가 크게 한 번 흔들리더니 입이 움직였다. "그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죠?" "저는 항상 그룹의 리더 역을 도맡아 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에 자신이 있나요?" "대체로 그런 편입니다." 목 뒷덜미를 손가락으로 긁으며 그가 나를 본다. "그럼 자신의 외모에도 자신이 있나요?"

 

면접은 20분 동안 이어졌다. 그들은 내가 제출했던 자기소개서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사소한 질문들을 쏟아부었다. 20분 뒤 면접관들의 표정은 대수술을 집도한 내과 전문의들 같았다. 그들은 나름의 날카로운 메스들을 들고 내 속을 다 헤집어 보았을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수술을 당한 나로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20분은 너무 짧았다. 그렇다고 묻지도 않는 것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었다. '이 자식들아. 나를 알기 위해서는 이런 이런 얘기를 들어야지.' 그렇다고 그들이 나의 다리 떠는 습관까지 알 필요는 없었다. "면접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는 나를 아니?" 친구는 꽥꽥거렸다. 편의점에 들어가 우유를 마실까 두유를 마실까 고심하는 사이, 난잡한 잡지가 내 눈에 띄었다. '차라리 스트립 쇼를 할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