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매섭다.
태백에 올라왔다. 고도가 높은 이 도시의 첫 인상이 매섭기 짝이 없다.
무장한 곳을 뚫지 못하는 바람은 한없이 이마에 세차게 제 몸을 부딪히며 나를 괴롭힌다.


추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석탄박물관에 올라가서 자수정과 에메랄드, 그 외의 잡다한 돌들을 구경하고 지질상식을 연습하고
갱내체험을 하기 위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저 모형일 뿐인데 그냥 마음이 시큰해졌다. 아무도 모르는 내 비밀과 관련이 있었을 뿐.


한 상 가득 차려진 태백의 산채비빔밥에 파전도 한 장 같이 상에 놓아두고
졸음과 피곤을 한 입에 담아서 꾸역꾸역 한껏 양을 채웠다.
앉을 데를 찾아서 서성거리다가 간신히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나는 스물 살 때와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람을 좋아하지 시작했다는 거야. 사람욕심이 자꾸 나"
"예전엔 절대 떨치지 못할 줄 알았는데, 2008년엔 드디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아."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상처의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건 한 쪽 신경에 자꾸 거슬려"
"뒤쳐지지 않기 위해 실력을 쌓을 거야. 실력이 없으면 내가 사는 방식이 남에 의해 좌우될테니"
지나치게 적은 녹차라떼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우리의 여행이란 건 결국 무언가 덜고 와야 하는 시간이니깐.
덜어내고 덜어내기 위해서 애쓰고, 그렇게 시간이 갔다.


서울역으로 돌아와 지하철을 기다린다.
홍대 가는 중이야.
지하철에서 예전처럼 전화를 받고 생각없이 창문을 보고 목적지에 도착해 내린다.
가벼워진 주머니만큼 가벼워진 마음이 맘에 들고
그렇게 다시 홍대의 밤거리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안녕,
그리고 이제 다시
안녕,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