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적응기 | Posted by 풀내음+ 2010. 3. 20. 07:20

그대 내 이름을 불러준 순간!


나는 거의 매일 영어 이메일을 쓴다.
해외바이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가장 효율적인 매체인 이메일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는 신입사원이지만
그들은 우리 회사와 오랫동안 거래를 해왔다는 점이다.

"I have recently joined as a new staff at 000"

이렇게 말하고 그들은 welcome이라 반겼지만
그들은 연신 이메일마다 내 자리에 앉아있었을 나의 전임들 이름을 썼다.

Dear Sophia
Dear Stella

2월 1일 입사를 했으니
거의 한 달이 넘도록 그들은 나에게 다른 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며칠 전 이메일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I want to inform that Stella is not working for 000 any more.
All jobs about 00 can be given to me.

이 녀석들
이래도 계속 부를테냐! 이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Sandy가 달라졌다.
오홍!

Dear June
Dear June
Dear June
.....

모든 이메일에 내 영문이름으로 오기 시작한 것이다.

별 것 아닌 이런 변화에
나는 약간의 흥분을 느꼈다.

내 존재가 확실히 성립된 것이다.

김춘수 시인도 말했지 않은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 '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일일지 모르겠지만
내 이름으로 무언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신입사원 June에게는 작은 떨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처음'의 흥분이 늘 있다.

처음으로 학교를 가게 된 날 온통 새로운 것 천지인 책가방을 들고 걸을 때의 설레임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받게 된 날 느낀 뭔가 모를 두려움과 기대감
처음으로 맥주 한 잔을 마셨을 때 입안에 감도는 달콤함과 씁쓸한 맛
처음으로 장미꽃을 받았을 때 느낀 마냥 좋은 행복함과 감사함
처음으로 내 손으로 돈을 벌었을 때 느낀 뿌듯함과 자신에 대한 긍정
처음으로 이력서를 쓰게 되었을 때 느낀 막막함과 난처함, 그리고 또 다른 기대감

하지만 우리는 그 처음을 반복하다보면
지루한 일상이라는 말로 혹은 너무나 익숙한 당연함이란 말로
이유모를 흥분들을 푹 익은 김장김치처럼 축축 처지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어쩌면 난 오랜만의 '처음'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설렘이 좋다.

정말 무언가 다른 일이 시작되었다는 기쁨이
내 이름이 불리워진 순간
다시 한 번 꽃을 피운 것 같다.

오늘도 Sandy에게서는 무슨 이메일이 와 있을까?

신입사원 June에게는 아직 일상이 분홍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