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매일 영어 이메일을 쓴다.
해외바이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가장 효율적인 매체인 이메일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는 신입사원이지만
그들은 우리 회사와 오랫동안 거래를 해왔다는 점이다.
"I have recently joined as a new staff at 000"
이렇게 말하고 그들은 welcome이라 반겼지만
그들은 연신 이메일마다 내 자리에 앉아있었을 나의 전임들 이름을 썼다.
Dear Sophia
Dear Stella
2월 1일 입사를 했으니
거의 한 달이 넘도록 그들은 나에게 다른 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며칠 전 이메일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I want to inform that Stella is not working for 000 any more.
All jobs about 00 can be given to me.
이 녀석들
이래도 계속 부를테냐! 이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Sandy가 달라졌다.
오홍!
Dear June
Dear June
Dear June
.....
모든 이메일에 내 영문이름으로 오기 시작한 것이다.
별 것 아닌 이런 변화에
나는 약간의 흥분을 느꼈다.
내 존재가 확실히 성립된 것이다.
김춘수 시인도 말했지 않은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 '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일일지 모르겠지만
내 이름으로 무언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신입사원 June에게는 작은 떨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처음'의 흥분이 늘 있다.
처음으로 학교를 가게 된 날 온통 새로운 것 천지인 책가방을 들고 걸을 때의 설레임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받게 된 날 느낀 뭔가 모를 두려움과 기대감
처음으로 맥주 한 잔을 마셨을 때 입안에 감도는 달콤함과 씁쓸한 맛
처음으로 장미꽃을 받았을 때 느낀 마냥 좋은 행복함과 감사함
처음으로 내 손으로 돈을 벌었을 때 느낀 뿌듯함과 자신에 대한 긍정
처음으로 이력서를 쓰게 되었을 때 느낀 막막함과 난처함, 그리고 또 다른 기대감
하지만 우리는 그 처음을 반복하다보면
지루한 일상이라는 말로 혹은 너무나 익숙한 당연함이란 말로
이유모를 흥분들을 푹 익은 김장김치처럼 축축 처지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어쩌면 난 오랜만의 '처음'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설렘이 좋다.
정말 무언가 다른 일이 시작되었다는 기쁨이
내 이름이 불리워진 순간
다시 한 번 꽃을 피운 것 같다.
오늘도 Sandy에게서는 무슨 이메일이 와 있을까?
신입사원 June에게는 아직 일상이 분홍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