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미루기만 했던 일을 오늘은 기어코 시작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말이다.

싸이에 꽁꽁 챙겨서 보따리까지 싸놓은
내 마음의 짐들을 이 곳으로 옮기는 이사.

실제 이사보다
더 오래 걸리고
더 힘들만한 이사다.

물건이야 하루만에 후딱 싸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때의 시간'이 함께 박제되어 있는
그 끼적임들을
어떻게 무조건 나를 수 있겠는가.

실제로 좋아했던 시 한 수 다시 옮겨적었는데도
괜히 마음이 힘들다.
그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뿌옇게 먼지가 앉은 사진첩을 오랜만에 꺼내서 들춰보는 것처럼
오래전 남긴 기록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기분이란,
무언가 울컥
가슴에
무언가가
뿌옇게 그려지다가 사라지는 기분

내가 그 때 이렇게 생생히 살아있었구나.
안도와 반가움, 그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을만큼
미치도록 그리운 시간들

아무래도
난 점점 퇴행의 시간을 걷는가보다

갈수록

톡 뒤돌아서
예전 그 길로 뛰어가고 싶을 뿐이다.

여하튼 당분간은 이 대단위의 이사를 통해서
'그 시간'에 여전히 갇혀있는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반가워.
오랜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