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 Posted by 풀내음+ 2016. 4. 11. 16:28

배려의 조건

임신 시절에 지하철을 타면 늘 불만이 넘쳤다.

왜 사람들은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을까
왜 임산부 자리라고 쓰여있는데도 앉아있는걸까
왜, 대체 왜 배려해주지 않는 것일까

시간이 제법 지나 이제 함께 걸어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된 우리 딸.
오늘 딸과 함께 지하철을 탔다.

왜 양보를 해주는 사람들이 넘치는건지
왜 아이에게 활짝 웃어주시는건지
왜 아이와 외출하는 나를 걱정해주는건지
대체 왜 사람들은 배려가 이리도 넘치는건지

임신했을 때에 비해 시민의식이 갑자기 성숙해진걸까.

문득 내가 지하철에 탔던 시간대에 대해 생각해봤다.
임신 시절의 지하철이란, 다시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고 모두 다 일터로 전진하는 출근 지옥철과 지쳐서 늘어져버린 몸뚱아리를 끌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퇴근 지옥철 중 하나였다.
모두 힘든 시간인 셈이다.
나 하나도 벅찬데 배려까지 하기란, 겨우 비집고 들어간 빽빽한 지하철에서 웃어주기란 힘든 일이 분명하다.

오늘 탄 지하철은 한가한 오전 시간대
누구든 책을 읽어도 방해받지 않고, 옆사람과 부딪칠 일 없는 지하철에서 배려는 분명 출퇴근길보다는 쉬웠을지 모른다.

너무 많이 생각한건지 모르겠지만
배려에도 조건이 필요한 것 같다.
내가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
내게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겨야 한다는 것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욕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행복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